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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본 미니칼럼

김해창 교수의 생태 이야기 (30) 조개껍데기 구멍에 숨겨진 비밀

관리자 | 2022.08.01 14:05 | 조회 2469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불가에 마주 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멀리 달그림자 시원한 파도소리/ 여름밤은 깊어만 가고 잠은 오질 않네/(하략)’.

지금 5060세대가 윤형주의 ‘조개껍질 묶어’라는 이 노래를 들으면 대학 시절 여름 바닷가에 놀러가 여럿이 즐겨 불렀던 추억들이 금새 떠오를 것이다. 그런데 조개껍질이란 말은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국어사전을 보면 ‘껍질이란 물체의 거죽을 싸고 있는 딱딱하지 아니한 켜(겹겹이 포개진 물건의 낱낱의 층)’로 바나나나 사과 껍질이라고 쓰는 것이 맞고 조개나 호두 달걀 같이 속을 사고 있는 단단한 물질은 껍데기라고 해야 한다. 국어사전에 껍데기는 ‘달걀이나 조개 같은 것의 겉을 싸고 있는 단단한 물질’이라고 나온다. 

요즘 여름 해수욕철에 바닷가에 가면 조개껍데기 줍기를 많이 하는데 이들 조개껍데기를 자세히 살펴보면 이상할 정도로 둥글고 정교하게 뚫린 구멍이 있는 것들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조개껍데기를 실이나 철사에 묶어 ‘그녀’의 목에 걸어주며 사랑을 고백하기도 하지만 대체 이런 예쁜 조개껍데기의 구멍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일까. 누가 일부러 뚫은 것일까 아니면 파도와 자갈에 씻기면서 절로 만들어진 것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대답은 “글세”이다.


갯바위에 붙어 있는 굴 위에 대수리가 올라 앉아 치설로 굴껍데기를 갉는 중. [사진=손민호 박사] 

그런데 이 조개껍데기에 구멍을 뚫은 ‘범인’이 있다고 한다. (주)해양생태기술연구소 대표인 손민호 박사(해양생태학)는 『갯벌에서 심해까지』(대표저자, 해양수산부, 2015)에서 그 범인은 바로 둥근구슬우렁이, 큰구슬우렁이 등 ‘육식성 고둥류’라고 말한다. 현재 지구상에는 약 7만5000종의 고둥류가 있으며, 이들은 해조류를 갉아먹는 초식성과 다른 동물의 사체를 먹어치우거나 살아있는 다른 동물을 잡아먹는 육식성 고둥류 등으로 나뉘는데 이 육식성 고둥류가 바로 조개껍데기에 구멍을 뚫은 범인이라는 것이다.

손 박사는 “육식성 고둥류는 작지만 단단한 실톱 같은 이빨뭉치(치설, 齒舌)가 있는데 이를 보통 5시간 정도 계속 움직이면 결국엔 조개껍데기에 구멍이 뚫리게 된다”며 “이 때 조개껍데기를 무르게 하기 위해 이빨로 껍데기를 갉는 동시에 석회질로 된 껍데기를 무르게 녹일 수 있는 산(酸)을 분비해 쉽게 구멍을 뚫는다”고 말한다. 고둥은 또한 구멍을 뚫은 뒤 ‘입주둥이’라 부르는 긴 주둥이를 구멍 속에 넣고 효소를 분비해 조갯살을 죽처럼 만들어 빨아 먹는다는 것이다.

사전을 보면 조개는 ‘이매패강(二枚貝綱)에 속하는 연체동물의 총칭’이다. 연체동물 중에서 가장 많은 종을 갖고 있는 고둥은 갯바위나 해조류가 무성한 곳 또는 민물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흔한 패류이다. 고둥의 외양상 가장 큰 특징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패각(껍데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패각은 딱딱한 껍데기로 몸을 보호하는 기능과 조간대에 사는 종들에게는 수분의 증발을 막아준다. 이 패각 안쪽으로 고둥의 몸이 있고, 이 몸은 덮개로 덮여있는 것이다. 고둥은 패각 밖으로 몸을 내밀어 치설이라는 특이한 기관으로 해조류를 갉아먹거나 해조류에 붙어 있는 작은 생물체를 먹고 산다. 그래서 해조류가 무성한 곳을 살펴보면 쉽게 고둥을 발견할 수 있다. 해조류의 엽상체(葉狀體)에 붙어 있던 고둥들은 사람이 접근하거나 위기를 느끼면 순간적으로 복족(蹼足)을 패각 속으로 말아 넣는데, 이때 몸이 엽상체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이처럼 이매패류(二枚貝類)를 제외한 고둥 등의 연체동물에는 치설이라는 기관이 있다. 수중사진가인 박수현 국제신문 마이스사업국장이 쓴 『거의 모든 것의 바다』(2022)에도 치설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치설은 혀와 같은 모양으로 굽은 이빨이 차례로 늘어서 있다. 여기에 있는 근육을 반복적으로 수축하고 이완하면서 다른 고둥이나 조개껍데기에 구멍을 뚫어 속살을 녹여 먹거나 바닷말의 엽상체(葉狀體)를 갉아먹는다. 피뿔고둥, 큰구슬우렁이, 갯우렁이, 대수리, 맵사리 등의 육식성 고둥은 사냥감의 껍데기 한 부분을 반복적으로 갈아 구멍을 뚫은 후 이 구멍으로 소화액을 넣어 사냥감의 속살을 녹인 다음 입을 대롱처럼 집어넣어 빨아 먹는다. 특히 큰구슬우렁이는 엄청난 양의 조개를 잡아먹어 패류 양식업자에게는 경계 대상이다. 고둥류 중 맹독을 가지고 있는 청자고둥의 경우 치설이 작살 모양으로 변형되어 발사시킬 수 있다. 이때 발사되는 청자고둥의 치설에는 강력한 독이 들어 있어 먹잇감을 기절시키거나 포식자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조개껍데기도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것이 있다. 그것은 대왕조개이다. 일본과 타이완의 중간 수역으로 광범위한 수심에는 성체의 길이가 1.5m에 무게가 200kg에 이르는 대왕조개가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다른 조개와 마찬가지로 평소에는 입을 벌리고 먹잇감을 찾다가 위기를 느끼면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어버린다. 원주민들은 한 번의 자맥질로 대왕조개를 뒤에서 안고 통째로 건져 올린다고 한다. 만약 부주의로 조개 입에 신체 일부가 물리게 되면, 수면으로 상승하지 못하고 물 속에서 최후를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대왕조개는 ‘식인조개’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이 붙어있다고 한다(『재미있는 바다생물 이야기』, 박수현, 2006).

조개껍데기가 예술작품에 정말 멋지게 등장한 것도 있다. 그것은 가리비 껍데기이다. 바로 미의 원천 또는 탄생을 기원하는 상징으로 인식돼 온 보티첼리(1445~1510)의 명작 ‘비너스의 탄생’에서다. 미의 여신 비너스가 가리비 껍데기를 타고 키프로스 섬 해안에 도착하는 장면을 묘사한 것이다.

다시 바닷가로 돌아 가보자. 물이 빠진 갯바위에 있는 조개껍데기 위에 고둥이 붙어있는 장면을 본다면 한번 유심히 살펴보자. 이들은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니다. 고둥이 목하 ‘작업중’인 것이다. 갯바위에 붙어 있는 담치나 굴도 자세히 보면 그 위에 엄지손가락 절반 크기의 대수리가 올라 앉아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은 공생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개의 천적인 육식성 고둥이 조개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먹이를 취하기 위해 몇 시간이고 애를 쓰며 ‘이빨을 갈고 있는’ 고둥과 이 고둥에게 잡아먹히는 신세가 된 조개가 함께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여러분은 그 중 어느 쪽에 마음이 더 쏠릴 것 같나요.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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