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송우 이사장 세상읽기] 부산시 슬로건 이대로 좋은가

관리자 | 2023.02.19 16:42 | 조회 2090



최근 부산의 이미지를 새롭게 할 소위 부산시 슬로건이 발표됐다. 선정위원회는 ‘부산이 좋다(Busan is good)’로 선정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선정위가 정리한 3개의 안을 두고 시민 투표로 결정했다고 한다. 많은 표를 얻은 안으로 뽑았다지만 팍팍한 살림살이에 지친 대다수 시민은 무반응에 가깝다. 그나마 부산시 슬로건에 관심이 있는 시민의 반응은 냉담하다 못해 부정적이다. 한 마디로 부산의 정체성이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20세기 말까지 대한민국에서도 시민의식 확립이나 정부 정책 주입을 목표로 제작된 표어를 흔히 볼 수 있었다. 2000년대 이후로 지자체의 이미지를 부각하고자 슬로건을 제정하기 시작했다. 부산도 2003년에 슬로건을 만들어 20년 이상 사용해 왔다는 점에서 슬로건 제정 자체를 문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부산시가 정한 슬로건은 우선 두 가지 점에서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왜 굳이 슬로건을 우리말 대신 영어로 정했는가 하는 점이다. 그동안 국내 대부분의 슬로건은 한국어 문구였는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영어 슬로건 사용이 유행처럼 번져서 지금은 대도시 지자체들을 중심으로 영어 슬로건이 급속히 늘고 있다. 소위 세계화의 바람을 타기 위해서는, 그리고 세계도시를 지향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공용어처럼 돼 있는 영어문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문제가 바로 드러난다. 우리 도시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언어는 우리말이다. 우리의 정서와 개념을 영어로 다 온전하게 표현하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굳이 영어를 사용한 것은 그만큼 문화적 주체성을 의식하지 못한 결과다. 한 지역의 정체성과 특성은 지역민이 공유한 내면의 역사의식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런데 이 의식을 가감 없이 드러낼 수 있는 언어는 그 지역인이 통용하고 있는 일상어이다. 영어를 상용하고 있지도 않는 부산시민을 위한 슬로건을 영어로 내건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박수칠 일은 아닌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그 어느 지역보다 외국어 남용이 심각한 부산을 감안한다면, 우리 문화의 뿌리인 우리 말글의 슬로건을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둘째는 이번 슬로건의 문안 결정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니, 디자인 전공자가 선정위원회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이 슬로건 선정 과정에 참여했다는 점이다. 선정위원들의 일방적인 선정을 피하기 위해서 시민의 공모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발표된 내용을 보면 선정위원회가 최종 3개의 안을 결정해서 시민 투표에 붙였다. 어떤 슬로건이든지 그 고안 과정은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슬로건은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 기대감을 줄 수 있는 명확한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어야 하고,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도록 시적인 감각과 운율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문안을 창안하는 작업은 전문 디자인 전공자들이 할 일이 아니다. 이 작업은 광고언론학자 시인 소설가 언론인 카피라이터 등 소위 슬로건 문안 작성을 전문적으로 해온 사람들에게 일차적으로 맡겨져야 한다. 디자인 전공자들이 할 수 있는 작업은 이들이 완성한 문안을 바탕으로 현실적으로 필요한 브랜드 디자인 작업을 해 나가면 된다. 그런데 디자인 전공자들이 중심이 돼 최종 슬로건 문안을 선정했다는 것은 그 슬로건의 내용과 질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가늠하게 한다. 그래서 ‘부산이 좋다’는 슬로건에서 어떤 부산 정체성을 찾을 수 있으며, 어디서 부산만의 특성을 느낄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것이다.


슬로건은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시적인 함축성을 내포하고 있을 때, 무겁지 않으면서 가볍지도 않은 한 구절의 시구로 일상화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부산이 좋다’ 슬로건은 함량미달이다. 도시도 마케팅의 대상이 된 시대에 부산이 내보일 이 슬로건으로는 다른 지역과 변별되는 개성과 특징을 보여주지 못한다. 그리고 선정위원회에 속한 대부분의 디자인 전공자가 부산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아니라는 점도 이런 결과를 낳은 원인의 하나라고 본다. 부산의 정체성은 부산사람이 만들어 나가야 할 몫이란 것을 부산시는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할 뿐이다.




남송우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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